상주 관공서
개발 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맡겨놓으면 알아서 일을 할 때쯤이었다.
팀장과 함께 입사한 동기가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관공서로 출장을 가게됐다.
팀장을 제외한 개발진 모두는 간만에 칼퇴할 꿈에 부풀어 각자 퇴근 이후의 스케줄을 잡고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친구들과 저녁 자리약속을 잡고 퇴근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상주로 내려간 동기로부터의 전화였다.
"형! 지금 급하게 작업해야할거 없지?"
"급할 건 없는데 왜?"
서울에서 작업해야 할 게 있나 싶어서 물어본 물음에 동기가 힘없이 대답했다.
"급한 거 없으면 내일 여기로 내려올 수 있을까?"
"잉? 왜? 작업량이 많아??"
팀장이랑 같이 내려간 마당에 사람을 하나 더 불러야 할 정도로 처리할게 많은가 싶어서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응...그런편이야"
"그래 그럼 내일 오전 버스 시간 봐서 내려가기 전에 전화할게"
관공서 작업이라는게 핸드폰 인터넷 다 끊고 서버실에 들어가서 작업해야 하다 보니 혼자 작업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나 보다 혼자 납득한 나는 흔쾌히 오케이하고 전화를 끊었다.
상주에 내려간 팀장도 출장 마지막날 연차 쓰고 가족여행 간다고 했으니 사람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다시 한번 납득하곤 별다른 확인 전화 없이 다음날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상주로 내려갔다.
상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관공서까지 시내 버스를 타고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관공서에 도착해서 동기에게 전화해서 불러내리고 정자에서 담배 불을 붙이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내려오느라 고생했어요!!"
"내가 고생하나 뭐, 버스가 고생했지"
실없는 소리를 주고 받으며 담배를 피우다가 물어봤다.
"그래서 내가 뭘하면되는데?"
동기가 미안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형! 사실, 형이 할 일이 없어... 그냥 놀다가"
"응??! 그게 뭔말이야?"
갑자기 이게 뭔소린가 싶었다.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내려왔는데 그냥 놀다 가라니? 일거리가 없으니 놀아도 된다는 소리는 반가웠지만, 왜?라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나를 왜 부른 건가
"그게... 어제 팀장이랑 저녁에 술 마시는데... 형을 부르면 내려오는지 보자고, 혼자 급발진하더니 불러보라고 시키더라고"
나는 입을 벌린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동기를 바라보며 붕어처럼 뻐끔뻐끔 거리기만 했다.
"그럼.... 그냥 불러본 거라고??"
"응, 그냥불러본거야 오는지 본다고"
소리 없이 썩은 웃음을 지으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난감한 표정을 짓는 동기를 보다 시키는 대로 한 사람이 뭔 죄가 있나 싶어졌다.
결국 속깊은 한숨을 내쉬며 동기의 어깨를 잡고 이야기했다.
"네가 무슨잘못이 있겠냐... 에효... 팀장이 팀장 짓 한 거지 뭐, 일단 들어가자"
동기와 구석에 있는 서버실로 들어가 팀장에게 인사를 했다.
"여~ 왔어!! 좀 쉬고있어"
네 하는 힘없는 소리로 팀장의 인사를 건성으로 받고 일하는 동기를 뒤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결국 구경만 3시간 정도 하다 일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는 관공소 근처의 허름한 모텔이었다. 다행히 숙박비를 아낀다고 방을 하나만 잡은 불상사는 없었다.
동기와는 어차피 내일 하루만 더 일하면 팀장은 가족여행 가니까 우리끼리 편하게 일 정리하고 복귀하자고 이야기하며 저녁식사를 빙자한 술자리를 가지러 모텔 근처 삼겹살 집으로 이동했다.
"오느라 고생했어!! 한잔받아!"
"에이 내려오는게 뭐가 어렵다고요! 다음에도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
팀장의 쉰소리에 영혼없는 응답으로 대응하고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고기라도 많아 먹어서 날려버린 내 자유시간을 보상받겠다는 심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주려면 소고기라도 사주던가, 냉동 삼겹이라니
"그리고 내일은 일 정리하고 같이 서울 올라가자"
팀장이 갑자기 복귀할때 서울로 같이 가잔다.
"네? 팀장님 가족 여행은 어떻게 하고요?"
"가족한테는 여기 일이 많이 남아서 좀더있어야 할거 같다고 이야기했어"
동기 녀석과 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무슨 말을 던져야 할지 모르겠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팀장은 왜그랬을까?
술자리에서 팀장은 주저리주저리 가족여행을 안 가는 이유를 이야기했지만 요약하면 자기가 여행 가서 뭘 하냐는 거였다.
아니, 그럼, 왜 가족여행을 계획하지? 애초부터 빼고 계획을 잡으라고 하던가
동기 녀석과의 편한 복귀를 예상했던 나는 그때부터 팀장과 함께하는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불편했다.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 남아있는 걸림돌이 계속 목을 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기와 둘이서 나눈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였다.
팀장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게 불편해진가 아닐까? 일주일에 1~2일 집에 들어가고, 집에 가도 옷만 갈아입고 바로 복귀하는 일상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로 돌아가는 게 불편해진 건 아닐까?
점점 삐딱해지는 성격도 가족과의 관계가 불편해져서 생기는 마음의 균열 때문은 아닐까?
매일 술자리의 안주로 등장하는 팀장에게 처음으로 연민이라는 걸 느끼게 한 절정의 순간은 팀장의 두 딸이 팀장에게 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였다.
팀장이 가족 여행에 가지 못하게 됐다는 전화를 했을 때 아이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응 알았어~ 아빠 그럴 줄 알았어"
물론 자기가 만든 상황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가족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다니...
결국 우리도 저렇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마도 팀장에게서 얻은 단 하나의 교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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